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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일상] 독일에서 채식 시작 - 한국, 독일 채식생활 2년 반 - 그리고 채식 중단까지의 이야기

쪼애 ZOE 2015. 9. 17.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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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채식을 시작한 것은 독일에서 교환학생으로 지내던 때였다.

 

채식 이전의 생활을 간단히 얘기하자면

몇년 간 계속 된 불규칙한 생활패턴, 식습관으로 몸이 망가질대로 망가져 있었다.

졸업작품이 끝나고 찾아간 한의원에서 의사선생님께서는,

언제 쓰러져서 못일어나도 이상할게 없었다고 하셨다.

최고혈압 60, 최저혈압 38이었다.

 

신경질 적이고, 화도 많았다.

 

슈투트가르트 캠퍼스

졸업작품 후, 교환학생으로 지낸 독일에서의 1년의 (취업)유예기간을 보내며

휴식과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다.

 

다시 규칙적인 생활 패턴을 되찾았다.

아침에 일어나고 하루에 세끼를 정해진 시간에 먹으며 12시 경에 잠이 들었다.

하루에 7-8시간의 수면시간을 확보했다는 것이 무엇보다 큰 변화였다.

 

무엇보다 더이상 부모님과 함께 사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생활을 혼자 해결해야 했다.

 

예전에는 먹고 사는(!!)데에 이렇게 많은 시간이 들어간다고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식재료를 직접 고르고 요리를 직접하는 것에 재미를 붙였고,

내 일상생활을 직접 면밀이 관찰하여

조금씩 건강을 회복하고 있는 중이었다.

 

 

본격적으로 채식을 시작 한 것은 2012년 3월.

아무리 건강을 회복해도,

지긋지긋한 여드름과 여드름 흉터는 없어지지 않았다.

아무리 순한 화장품으로 바꿔보아도,

몇년 간 계속 되었던 여드름과 그 흉터들은 계속 그 자리에 남아 나를 괴롭혔다.

유기농 화장품으로 바꿔보아도, 여드름이 더 번지지 않을 뿐 없애는 것은 무리였다.

 

 

결과부터 얘기하자면,

그 지긋지긋한 여드름과 결별을 할 수 있었던 것은 80% 이상이 채식때문이었다.

내가 한 것은 비건채식(완전채식)은 아니었다.

 

페스코채식

간단하게 말하자면 육류를 제외한, 생선 해산물 유제품은 먹는 채식이다.

채식의 종류

생선이 비싼 독일이어서 물론 생선이나 해산물을 자주 먹는 것은 아니었지만

첫리길도 한걸음부터 라고 했으니

우선은 고기를 끊는 것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결정을 했지만, 오늘부터 시작! 이라고 해도 100퍼센트 딱 끊어지지는 않았다.

 

쓸데없는 완벽주의가 있어서, 한번 지키지 못했다고 생각하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지 않고서는 못배기는 성격이었는데 (혹은 아예 그만두거나)

그때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할 수 있다고 격려해주고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다독여 주었다.

그렇게 두달 간, 고기를 내 손으로 요리하지 않는 기간을 보내고,

누구에게 초대받아 식사를 하게 되는 경우만 아주 소량 고기를 먹었다.

그리고 그 두달 간, 주변사람들에게 아주 서서히 알리기 시작했다.

페스코 채식을 시작했다고..

 

유럽에서는 채식을 하는 인구가 많고, 종교의 이유든 건강상의 이유든 혹은 신념때문에도 채식을 하는 사람이 많고,

그만큼 인식도 좋은 편이라 쉽게 지속할 수 있었다.

그리고 두 달 후, 5월부터는 완전 고기를 끊게 되었다.

시작 후 3달 정도는 고기가 먹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유혹에 못 이겨 먹은 적도 있었고.

하지만 그 생각이 서서히 사라지더니 3달 후 부터는 아예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제서야 진짜로 채식을 한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쯤 되니 가까운  주변사람들도 이미 알게 되어서, 더 이상 고기를 권하는 경우도 없어졌다.

 

 

부모님께도 메신저로 요즘 채식을 시작했다고 알려드렸다.

엄마는 식단을 걱정하셨지만 그래도 다른 걸로 영양을 잘 채우라고 말씀하시며 말리진 않으셨고,

아빠는 좋은 결정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별 탈 없이 나의 채식생활은 지속되었고,

8월이 될 무렵 교환학생 기간이 슬슬 끝나가고 있었다.

 

5개월간의 나에게 일어난 변화라면,

우선 여드름이 사라졌다.

아직 흉터는 그자리에 남아 나를 괴롭히고 있었지만 통증을 수반했던 화농성 여드름이 사라졌다.

피부톤도 얼룩덜룩 하던 것이 많이 정돈되었다.

몇년간 따라다니던 여드름이 이렇게 금새 사라지다니.. 믿기 힘들었지만 사실이었다.

아직 뾰루지들이나 좁쌀여드름, 흉터는 그대로 남아있었지만,

더이상 많이 올라오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안에 일어나 변화가 가장 크다고 말할 수 있다.

짜증과 화가 많이 줄었다.

 

워낙 다혈질인 성격에 신경질적인 성격인데, 채식을 한 후로는 화 자체가 잘 나지 않았다.

이것은 나중에 관련 글들과 서적을 찾아보면서, 그럴수 있겠구나...하고 생각한 것인데

육식이 사람을 공격적인 성향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이 과정을 몸소 체험했고, 지금도 이 말을 믿고있다.

 

교환학생이 끝날 무렵,(채식 시작한 지 5개월쯤)

한국에 돌아가서 다시 고기를 먹어야 하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주변의 한국친구들도 이제 돌아가면 슬슬 고기 먹어야하는거 아니냐며 한마디씩 건넸고,

마음한구석에 정말 그래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돌아가기 전 어느날 마트에 가서, 평소엔 가지않던 정육코너로 갔다.

 

소감은?

 

한마디로 최악이었다.

고기를 사기는 커녕, 코너 가까이만 가도 나는 그 선선한 느낌과 생고기의 냄새

특히나 독일은 소세지코너가 어마어마하게 큰데, 그 근처로 가기만해도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결국은 채소와 과일만 사가지고 돌아왔다.

 

그리고 8월말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내 채식생활은 계속되었다.

 

교환학생때 들었던 전공 수업이 학점으로 인정이 되어,

학교를 갈 필요가 없어 설계사무소에서 인턴쉽을 시작했다.

9월 중순쯤부터 출근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같이 인턴을 하고 있는 학교 후배가 채식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 친구는 아토피때문에 한약을 먹고 있었고,

한약때문에 고기를 먹지 않고 있었다.

그 이유때문에 채식을 시작했지만

지금은 채식하는 것이 이로운 것이라는 것을 스스로 접하고 실천하는 중이었다.

 

든든한 동지가 생긴 기분이었다.

 

점심엔 같이 도시락을 싸와서 먹기로 했다.

점심시간 마다 나가서 점심을 사먹는데,

주변의 식당에 채식으로 먹을 수 있는 메뉴라고는 비빔밥밖에없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그래서, 그럼 우리 같이 도시락을 싸오자며 의기투합(!)을 했다.

 

나의 도시락

 

그 친구는 자취를 하고 있어서 매일 도시락을 싸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부지런히 잘 싸왔고,

나도 집에있는 반찬들로 건강한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다행히 회사에서 백안시로 보는 사람들은 없었고,

같이 일하던 과장님 한분도 도시락을 싸오기 시작하셔서 작은 도시락 소모임이 만들어졌다.

 

그렇다고 사무실에 있던 모든 분들이 채식을 하는 우리를 좋게 생각하셨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인턴을 하던 마지막 날,

이제 내가 그만두니 회식으로 고기를 먹어도 되겠다, 하고 말씀하시던 한 분이 기억난다.

기분이 나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썩 유쾌한 기분도 아니었다.

고기를 안먹는다며 면박을 주거나, 억지로 먹이려는 분들이 없었던 것 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유학행을 결정한 후 다시 독일로 오게 되었고 

그후에는 좀 더 자유롭게 채식생활을 즐길 수 있었다.

 

 

그렇게 채식 2년 반 후,

채식을 그만두게 된 계기가 있었다.

 

운동을 하다가 손목을 다치게 되었는데,

병원가서 치료를 받아보아도 그때뿐이고 통증이 계속되었다.

결국은 의사와 상의 후 고기를 조금씩 섭취하기 시작했는데 신기하게도 2주 후 통증은 사라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채식을 시작할 때 나는 아무런 지식도 없었고

어떤 영양소의 결핍이 올 수 있으며,

그것을 어떻게 보충해야하는지 등 전혀 준비가 되있지 않은 상태에서 무작정 고기만을 끊었다.

 

먹은 것을 돌이켜보면 고기는 먹지 않았지만

오히려 탄수화물 섭취량은 많이 늘어났던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영양의 불균형이 왔던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병원에서 검진을 받았을 때에도 다른데는 이상이 없는데 단백질이 약간 부족한 상태라고 들었었다.

 

지금도 영양소에 대해 잘 안다고 할수는 없지만 그래도 그때보다는 더 잘할수 있을것 이라고 믿고 있다.

그 사이에 접한 정보들과, 나름대로의 노하우도 생겼고,

무엇보다 내 몸에대해서 이전보다 훨씬 더 잘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2년 반의 고기를 멀리하는 생활을 통해 내몸을 관찰하고 돌보는 것에 대해서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를 잘 안다는 것,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이 나와 잘 맞는지, 잘 맞지 않는지,

단순히 몸의 외부의 변화 뿐만 아니라 내장에 귀를 기울이기,

그리고 좀 더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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