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에세이

[베를린에세이] 와인을 만나다

쪼애 ZOE 2019. 4. 7.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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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을 마시기 시작한건 2013년

베를린에 와서 부터였다.

 

이전에도 와인을 마셔본 적은 있지만,

즐기는 편은 아니었고 그 맛을 잘 모르기도 했다.

 

그런 내가 와인을 마시기 시작한 이유는

순전히 독일에서 와인의 가격이 한국에 비해 저렴했기 때문이다.

 

지금 이 기회가 아니면 언제 또 와인을 마음껏 마셔볼 수 있을까 싶은 마음에,

또 적당히 취기가 오를 때까지 한병이면 충분하다는 이유로

혼자 술을 마시고 싶은 날이면 자연스레 와인을 찾게 되었다.

 

http://www.winetime.co.kr

하지만 그때도 와인에 대해서 흥미가 있다기보다는

그냥 주말에 집에서 영화 볼때 긴장을 풀어주는 술 정도로 생각했고,

그 이상의 관심은 없었다.

 

좋은 와인을 만나보지도 못했을 뿐더러,

사실 그 맛의 차이도 특별하게 못느낀다고 해야할까.

구별 가능한 것은, 

레드 - 화이트 - 로제 와인을 색으로 구분했던 정도였을까.

 

그러던 내가 와인에 관심을 가지게 된데에는 몇가지 계기가 있었다.

 

 

가장 첫번째 사건은, 2016년 즈음으로 기억한다.

 

크리스마스 휴가 때 독일인 남자친구의 집에 초대받아 가게 되었다.

남자친구의 아버지는 어머니가 준비하시는 요리에 맞춰

그에 맞는 술을 준비해주시곤 했는데,

그날 점심에는 연어요리에 맞는 화이트와인을 꺼내오셨다.

 

크리스마스 점심식사, 연어요리와 곁들인 화이트와인 (c) Hyejin Cho

항상 식사때마다 궁합이 좋은 술을 준비해주시지만

그날은 특별히 신경써서 준비해 주신듯 했다.

 

음식을 입에 넣고, 와인을 한모금 마셔보라고 

설명을 덧붙여주기면서, 본인이 직접 선을 보여주셨다.

 

 

이때의 경험은 정말 충격적이라 잊혀지지 않는다.

그때까지 수없이 생선요리와 화이트와인을 마셔보았지만

그런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음식을 입에 넣고 와인을 한모금 머금는 순간

음식과 와인 어느 쪽에서도 인지되지 못했던 강렬한 향이 올라오면서

향수를 입에 머금은 듯한 느낌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물로 입안을 헹구고 와인만을 머금었을 때에는 

전혀 그런 향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너무나 신기해서 몇번이고 음식과 와인을 입에 머금었던 기억이 난다.

 

 

두번째 계기는, 

베를린에서 아는 선생님께서 집에 초대를 해주셨을 때의 일이다.

 

함께 밖에서 가볍게 저녁식사를 마치고

아는 지인 몇분들과 함께 마트에 가서 와인 몇병을 골라 선생님 댁으로 갔다.

 

선생님께서 가격에 비해 맛이 좋은 와인이라며 같은 와인을 몇병 구입하셨다.

특별히 좋은 와인도 아니었고, 그냥 마트에서 구입할 수 있는 와인이었다.

 

선생님 댁에서 디켄터라는 것을 처음으로 보게되었다.

이전에도 들어본 적은 있었지만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http://www.earlyadopter.co.kr/81919

선생님과 와인과 주전부리를 준비하면서

주방에서 와인을 따자마자 우선 한모금 시음해보았다.

 

그냥 평범한 캘리포니아산 레드와인이었다.

 

잠시 후 선생님께서 주방 한켠에서 디켄터라는 것을 꺼내오시더니,

한병을 디켄터에 콸콸 옮겨담으셨다.

 

그리고 거실로 자리를 옮긴 우리는 모두의 잔을 채웠다.

 

아직도 그 순간을 잊지 못할 것 같다.

 

아까 주방에서 맛볼 때와는 너무나 다른 와인이었다.

비슷한 향에 비슷한 맛이지만 그 깊이와 풍미가 전혀 다른 와인이었다.

 

디켄터를 통해 공기를 충분히 접촉시키는 것 만으로 이렇게 다른 와인이 될 수 있다니

 

사실 그 전에도 많이 들었지만, 

와인을 아는 사람들의 예민한 감각으로만 느낄 수 있는 차이겠거니 하고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건 그냥 완전 다른 수준의 와인이었다.

 

 

그때부터였다.

와인을 직접 찾아 마시게 된 것은.

 

아직도 와인에 대해서 잘 모르는 초보이지만,

궁금해졌다. 와인이라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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