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베를린에세이

[베를린에세이] 바이올린을 다시 시작하던 날

2018년 연말

10년만에 다시 바이올린을 시작했다. 

 

가장 처음 바이올린을 손에 잡았던 것은 7살 때

2~3년 정도 배우고 그만뒀던 기억이 있다.

 

성인이되어 다시 바이올린 레슨을 받기 시작했으나,

바쁜 일상과 일에 치여 몇개월 지속하지 못하고 그만두고 말았다.

 

그때 의욕이 넘쳐 구입했던 수제 바이올린은 몇년 간 잠들어있었고,

다시 연주되는 일은 없었다.

 

(c) Wikimedia Commons, 무료이미지

 

독일로 가기로 결정을 한 후에 악착같이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월급은 고스란히 저축을 했고, 직장에는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녔다.

퇴근 후는 늘 바로 집으로 귀가였다.

 

그리고 가지고 있는 물건들도 처분하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돈을 모으기 위한 것도 있었지만,

내가 출국 후 집이 곧 이사를 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짐을 줄이기 위함이 가장 큰 이유였다.

헌책들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는데, 중고책방에 팔아서 꽤 쏠쏠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헌책들을 아무리 많이 파는 것보다

값나가는 악기를 내다파는 것이 현실적으로는 도움이 되었는데,

처음에는 악기를 팔 생각이 없었다.

 

그러던 중 출국일은 점차 다가오고 있었고,

목표로 한 금액을 채우기에 딱 바이올린 가격만큼이 모자랐다.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내가 다시 바이올린을 켜는 날이 올까.

 

당시 가지고 있던 바이올린은 구하는 과정또한 만만치 않았다.

체구가 작은 나에게 일반 4/4 크기의 악기는 약간 버거운 감이 있었는데

늘 남의 옷을 입은 듯한 불편함이 있었다.

 

그를 위해 선생님께서 특별히 구해주신 약간 작은 사이즈의 악기였다.

7/8 사이즈와 4/4 의 중간 정도라고 해야할까.

아니면 넥 부분이 좀 더 슬림하게 빠진 모델이라고 해야할까.

 

육안으로는 크기의 구별이 불가하지만,

잡았을때 그립감에서 크게 차이가 나는 그런 악기였다.

섣불리 팔아버리면 다시 구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하지만 내가 다시 바이올린을 켜는 날이 올까.

 

온라인 중고샾에 바이올린을 내놓았고,

내놓기가 무섭게 바로 구매 희망자에게 연락이 쏟아졌다.

 

하지만 아무에게나 넘겨주는 것보다는 나를 대신해 악기를 아껴줄 사람에게 전달하고 싶었다.

그러던 중 바이올린을 취미로 연주하려는 어린 여학생이 연락을 해 왔고,

그 친구에게 바이올린을 넘겨주기로했다.

 

언제 다시 시작할지 알 수 없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것 보다는

누군가가 소중히 연주해주는 편이 악기에게도 좋을 것이다.

 

 

Youtube 화면 캡쳐 (c) Hyejin Cho

다시 바이올린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아주 단순했다.

가수 헨리의 바이올린 연주가 나를 자극했다.

 

그의 악기에 대한 애정이 예전의 그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음악이 다시 연주하고 싶은 마음을 자극했다.

 

다시 시작해볼까

 

7살. 콩쿨 수상 (c) Hyejin Cho

 

베를린은 예술가들로 넘쳐나는 도시라 선생님을 구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고,

감사하게도 선생님께서 예전에 사용하셨던 악기를 빌려주셔서 그것으로 시작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악기는 고가이다보니 구입할 때에는 신중하게 선택하고 싶었는데,

우선은 선생님의 악기로 연습하며 천천히 악기를 알아보기로 결정했다.

 

선생님께 빌린 바이올린, 내 실력에 너무 과분한 너 (c) Hyejin Cho

처음에는 그저 다시 악기를 손에 잡는 것 만으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바이올린은 꾸준한 레슨과 연습이 병행되어야하는 취미기 때문에,

바이올린을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그저 예전의 취미를 다시 시작한다는 것과는 다른 의미가 있었다.

 

독일에 와서 목표를 이루고,

안정된 생활을 꾸리는 것이 가능해졌다는 증거였다.

 

과연 다시 바이올린을 손에 잡을 수 있을까

생각했던 그날이 떠올랐다.

 

바이올린을 그 소녀에게 넘겨주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차가운 바람에 괜시리 코끝이 빨갛게 물들어

마음이 울적해졌던 그날이 떠올랐다.

 

 

(c) Hyejin Cho

선생님과 레벨을 맞춰보고, 교재를 처음 펼치던 날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10년만에 처음 활을 긋던 순간.

더없이 행복한 순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