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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생활

[베지라이프] 2017년 무너진 페스코 식단 / 채식에 대한 집착과 깨달음

페스코 채식을 잘 지키려했던 2017년이었건만.

참 흔들림이 많은 한 해 였다.


무엇보다 2016년 가을부터 2017년 봄까지 석사 논문을 쓰면서

온 정신이 졸업와 취업게 쏠려 있어서

사실 뭔가를 잘 챙겨먹은 기억이 별로 없다.

그냥 늘 먹던대로 아침엔 과일, 점심엔 샐러드, 저녁엔 밥과 채소볶음.


그래도 상반기에는 페스코식단을 철저히 잘 지켰었는데,

졸업과 취직이 정해지면서

처음으로 독일을 방문한 엄마와 이모와 함께 유럽을 여행다니며

식단이 한꺼번에 무너졌다


(c) 쪼애

헝가리에서 먹었던 굴라쉬와 파프리카토마토볶음(?)



여행을 다니며 함께 식사하는데, 까다롭게 굴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나를 위해 요리해주시는 엄마에게, 고기는 절대 안되! 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물론 고기를 안먹는걸 알고계셨지만,

그래도 조금은 괜찮아 라고 굳이 요리해주시는 데에 인상쓰고 싶지 않았다.


매일 조금씩 달라져가는 생활 방식에 거리를 느끼고 있는 엄마와의 관계에

정확히 선을 긋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고 해야할까.


고기를 매끼마다 마구 먹어댄 것은 아니지만

역시나 복통이 찾아왔다.

마음은 더더욱 불편했다.


지키기로 한 나와의 약속이 무너진 느낌이랄까.



무튼, 엄마가 한국으로 돌아가고 다시 시작된 페스코 식단.

하지만 한번 무너진 식단을 다시 엄격하게 다잡기란 쉽지 않았다.


한번 내가 고기를 먹는 것을 본 사람들은,

다시 서슴없이 고기를 권하고, 거절을 해도 계속 들이밀었다.


무엇보다 문제는, 나 자신에게 있었다.

'에이 그래 이번까지만.'

이 마음이 불쑥불쑥 올라와 단호히 거절하지 못하고

먹고 탈이나서 다음날 후회하기를 여러번이었다.


그렇게 후회한 날이면 오히려 더 엄격해져 페스코도 아닌 비건식단으로 한달.

또 외부에서 사람을 만나거나 식사를 초대 받는 일이 있으면

고기가 포함된 식사.


그렇게 또 후회.

또 비건으로 몇주.


이런식으로 2017년 하반기를 보냈다.

그러다보니 받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스스로에게 실망하는 날이 많아졌다.

그냥 '노' 라고 하면 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이 짜증이 났다.


그러다 9월

베를린에서 법륜스님의 순회강연이 있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스님에게 질문을 할 기회가 주어졌다.


평소에 궁금하던 채식에 대한 나의 갈등을 스님께 여쭤보았다.

이에 대해서는 한번 따로 포스팅을 할 예정이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기로 한다.


하지만 질문의 과정에서 내가 깨달은 것은

아, 내가 채식을 한다는 그 상에 사로잡혀 있었구나. 하는 점이다.

고기를 안먹겠다고 생각하면 고기를 안먹으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내가 스스로, 나는 고기를 안먹는 사람이라, 라고 상을 만들어 놓고

그 상에 갇혀, 그것에 집착하고, 그 상을 벗어나면 스트레스 받고 있었다.


누군가가 고기를 권하면 그냥 아니라고하면 그뿐이었다.

스스로 채식주의자라는 상에 나를 가두지 않으니

누가 채식주의자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하면 그뿐이었다.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그냥 채식을 좋아할 뿐이라고.

그냥 고기를 먹지 않을 뿐이라고.


그 누구도 내가 채식을 엄격하게 지키지 못한다고 해서 삿대질 하지 않았고,

그 누구도 내가 채식을 한다고 해서 딱히 나의 식성을 배려해 주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하면 그뿐이었다.


(물론 이건 외국에서 살고 있기때문에 가능한 것이고,

한국에 있다면 사람들과 부딪힐 큰 사유가 된다는 것을 잘 알고있지만

이건 긴 이야기가 될 터이니 다른 포스팅에서 다루는게 좋을 듯 하다.)


아무튼,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모든 것이 가벼워졌다.


내가 고기를 먹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나의 몸과 마음을 불편하게 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느순간 육식을 하지 않는다 라는 상에 사로잡혀

내가 나 스스로를 불편하게 하고 있었다.


그 깨달음 이후로는 다시 가벼운 마음으로 채식을 할 수 있었다.

상에 집착하지 않으니, 오히려 더 가볍게 고기를 멀리할 수 있었다.


아무에게도 고기를 먹지 않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저 고기를 먹지 않았다.

그냥 너무 자연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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